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-튀르키예 관계 (문단 편집) === 근세~근대 === 18세기에 [[스웨덴 왕국]]과 [[루스 차르국]] 사이의 [[대북방전쟁]]이 벌어지는 와중 [[폴타바 전투]]에서 패배한 [[칼 12세]]가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였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277/0004260814?sid=103|#]] 해당 사건이 바로 양국 사이의 외교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. 칼 12세는 오스만 제국에 5년 가량 체류하였고, 오스만 제국 측에서는 칼 12세가 망명해 있는 동안 지출했던 돈을 스웨덴 측에 청구하기 위해서, 스웨덴으로 귀환하는 칼 12세에게 일군의 상인들과 통역사들을 달려보냈다. 이들은 대개 [[아르메니아인]]들이었는데,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국가로서, 자국 내 무슬림 신민들이 기독교 국가 출신 상인들과 직접 교류하는 것을 제한하였기 때문이다. 이후 오스만 제국은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스웨덴 왕국에 대사로 파견하곤 했으며, 이스탄불에 소재한 스웨덴 왕국 대사관 역시 아르메니아인들을 고용하여 외교 업무를 맡기곤 했다. 물론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에게 양국 외교를 전적으로 다 맡기다시피 한 것은 아니고, 오스만 제국의 대사나 군인들이 [[칼스크로나]]에 체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. 오스만 제국에서 자국 내 무슬림 신민들이 기독교 국가에서 온 외국인과 접촉을 제한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, 스웨덴은 [[루터교회]] 신도가 아닌 타 종파 혹은 타 종교를 믿는 외국 사절들은 주로 칼스크로나에서 맞이하곤 했다. 양국은 서로 지리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, 러시아 제국을[*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국명이 루스 차르국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변경되었다.] 견제하는 목적에서 친교 관계를 다시게 되었다. 그러나 대북방전쟁 이후 러시아의 국력이 급격히 성장하고 이후 [[러시아-튀르크 전쟁]]에서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이유로 양국 사이의 교류가 러시아 견제에 그다지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. 오스만 제국은 [[크림 전쟁]]에서는 승전을 거두었지만,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한 국가는 스웨덴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